
야근 핑계, 심장 핑계
By 윤서연
romance · 2026-04-23
한예서는 악명 높은 라준형 대표이사의 비서로 힘겨운 회사 생활을 시작한다. 팀장의 질책과 강 대표의 냉담함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던 중, 동료 김수현의 격려를 받는다. 퇴근 직전, 강 대표는 '그 물건'을 준비하라는 알 수 없는 지시를 내린다.
1장
야근 핑계, 심장 핑계
“한 번만 더 실수하면, 서류 봉투 받는 날이야.” 팀장의 싸늘한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한예서는 숨을 죽였다. 겨우 대기업 ‘한성 그룹’에 입사한 지 3개월. 인턴 딱지를 떼자마자 쏟아지는 업무에 정신을 차릴 틈도 없었다. 게다가, 맡은 업무는 하필이면 악명 높은 라준형 대표이사의 비서.
라준형. 한성 그룹의 후계자이자, 냉철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다. 그의 비서들은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예서는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날카로운 질책이 쏟아졌고,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한예서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전쟁이었다. 라 대표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회의 자료를 준비하고, 밀려드는 전화 응대에 정신이 없었다. 오전 회의에서 발표할 자료에 오타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을 때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급하게 수정했지만, 결국 팀장에게 지적을 받고 말았다.
점심시간, 한예서는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텅 빈 자리에 앉아 억지로 밥을 삼켰다. 다른 동기들은 벌써 회사에 적응해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한예서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이었다. ‘내가 정말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혼자 드시네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한예서는 고개를 들었다. 같은 팀의 김수현이었다. 그는 항상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네… 좀 정신이 없어서요.” 한예서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힘들어 보여요. 라 대표님 비서 일, 정말 힘들다고 들었어요.” 수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 쉽지 않네요.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고요.” 한예서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힘내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요. 제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도와줄게요.” 수현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한예서를 격려했다. 그의 따뜻한 말에 한예서는 잠시나마 위안을 받았다.
오후에도 업무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라 대표는 꼼꼼하게 보고서를 검토했고, 한예서는 그의 지시에 따라 수정하고 보완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마지막으로 라 대표에게 결재를 받아야 할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밤 9시. 사무실에는 몇몇 직원들만이 남아 있었다. 한예서는 마지막 서류를 들고 라 대표의 방으로 향했다. 노크를 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대표님, 결재 부탁드립니다.”
라 대표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짧게 대답했다. “놓고 가세요.”
한예서는 서류를 그의 책상에 놓고 방을 나서려던 찰나, 라 대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한예서 씨.”
한예서는 멈춰 서서 그를 돌아봤다. 라 대표는 차가운 눈빛으로 한예서를 응시하며 말했다. “내일 아침 8시까지, ‘그 물건’ 준비해놓도록 하세요.”
‘그 물건’? 한예서는 당황했다. 라 대표가 말하는 ‘그 물건’이 무엇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욱 냉랭했고, 감히 되물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한예서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섰다. 도대체 ‘그 물건’은 무엇일까? 한예서는 불안한 마음으로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