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의 비밀

Chapter 3 — 얼어붙은 심장의 붉은 맹세

한강 야경이 쏟아지는 레스토랑의 창가 자리는 짙은 어둠과 대비되는 은은한 조명 아래, 두 사람의 실루엣을 더욱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루소율에게 차가운 경고를 던지고 떠난 알민규의 잔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루소율은 억지로 잔에 담긴 와인을 삼켰다. 씁쓸함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렸다. 유도현은 그런 그녀의 미세한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아직도 그 사람 때문에 마음이 복잡해요?”

유도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그는 루소율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 올렸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단단했다. 그의 온기가 얼어붙은 루소율의 심장을 조금씩 녹여가는 듯했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루소율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 “그저… 잠시 생각할 게 많아서요.”

“생각할 게 많다면, 제가 옆에서 함께 고민해 드릴게요.” 유도현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제가 루소율 씨를 돕고 싶은 이유는, 단순히 사업적인 파트너십 때문만은 아니에요. 루소율 씨의 눈빛 속에 담긴 강인함과… 때로는 숨기려는 슬픔까지도, 제가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은 꿀처럼 달콤했지만, 루소율은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유도현의 진심을 알면서도, 그녀는 그의 호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의 곁에 있는 것은, 알민규에게 복수하기 위한 계산된 움직임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진심 어린 눈빛은 그녀의 냉담한 심장에 자꾸만 파고들었다.

“감사해요, 도현 씨.” 루소율은 그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하지만 제 일은 제가 해결해야 해요. 당신까지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루소율 씨는 저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유도현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의 관계가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복수가 끝난 후에도, 저는 당신 곁에 있고 싶어요.”

그의 고백은 루소율의 심장을 세차게 두드렸다. 복수만을 위해 달려온 지난날, 차갑게 식어버렸던 감정들이 그의 말에 조금씩 반응하는 듯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을 더 꽉 잡았다. 그의 따뜻함이 좋았다. 그의 진심이, 어쩌면… 그녀가 잊고 있던 ‘사람’에 대한 감정을 일깨우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때, 레스토랑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시선이 루소율을 향했다. 낯선 남자였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날카로운 눈매와 차가운 분위기는 루소율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는 루소율과 유도현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망설임 없이 걸어왔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묘한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낮고 차분하지만, 얼음장처럼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소율은 숨을 멈췄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그녀가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알민규였다. 그는 그녀 옆에 앉아있는 유도현을 힐끗 보더니,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전혀 온기가 없었다.

“내가 조금 늦었나 보군.” 알민규는 루소율의 턱을 거칠게 붙잡아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그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질투와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네가 그렇게 쉽게 잊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와의 모든 것을?”

루소율은 그의 손길에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그의 힘은 예상보다 강했다. 유도현이 상황을 파악하고 알민규에게 다가섰다.

“실례합니다만, 누구시죠? 이쪽은 제 파트너입니다.” 유도현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알민규에 대한 경계심이 묻어났다.

알민규는 유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루소율만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마치 그녀를 꿰뚫을 듯했다. “파트너? 흥미롭군. 나에게는 전부였던 여자가, 이제 겨우 파트너라는 사람과 이런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그는 루소율의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기억해. 넌 내 것이라는 걸.”

그 말을 끝으로 알민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레스토랑을 나섰다. 그의 뒷모습은 차갑게 식은 복수심 그 자체였다. 루소율은 떨리는 손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그의 손길이 닿았던 곳이 마치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유도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루소율 씨?”

루소율은 겨우 입을 열었다. “네… 괜찮아요.”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알민규의 등장과 그의 섬뜩한 경고는, 그녀가 애써 묻어두었던 과거의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았다. 복수를 위해 굳건히 세웠던 그녀의 성벽이, 그의 뜨거운 집착 앞에서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녀의 복수는 단순히 알민규를 향한 것이 아니게 될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싸움이 될지도 몰랐다. 그때, 그녀의 휴대전화에 알림이 울렸다. 발신자는 알 수 없었다. 메시지함에는 단 한 통의 메시지만이 와 있었다. ‘그를 믿지 마세요.’

루소율은 메시지의 발신자를 확인하려 했지만, 이미 메시지는 삭제되어 있었다. 누구의 장난일까, 아니면… 알민규의 또 다른 계략일까? 맹렬하게 타오르는 복수심과 함께, 불길한 예감이 그녀의 심장을 옭아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