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복수 중
Chapter 3 — 유리잔 속의 붉은 립스틱
차가운 성당 복도를 걷는 야은별의 발걸음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조금 전, 폐백실 앞에서 마주친 판석우의 눈빛은 5년 전 그날 그대로였다. 모든 것을 앗아갔던 남자, 그녀의 복수 계획의 핵심 인물, 그리고… 잊고 싶었지만 잊을 수 없었던 첫사랑.
‘석우 오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할 새도 없이, 그녀는 태성 그룹 회장실 문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떨리는 손으로 노크를 했다. 문이 열리고, 낯익지만 서늘한 눈빛의 남자, 이종석의 아버지가 그녀를 맞았다.
“야은별 씨. 여기까지 어쩐 일이지?”
회장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훨씬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은별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회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저희 결혼에 대해….”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회장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계약 결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내 아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
회장은 은별을 자신의 집무실 안쪽으로 안내했다.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에 앉아, 그는 묵직한 유리잔을 집어 들었다. 잔 안에는 짙은 색의 위스키가 담겨 있었고, 그 위로 붉은 립스틱 자국이 선명하게 묻어 있었다. 은별은 순간 숨을 멈췄다.
“이종석이… 꽤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거든.”
회장은 잔을 천천히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은별을 꿰뚫었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서도 묻어나는 묘한 향기, 예상치 못한 반응… 그런 것들 말이지. 당신도 그 ‘장난감’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거야.”
‘장난감’. 그 단어가 은별의 심장을 차갑게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종석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의 ‘장난’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모든 계획이 얼마나 위험한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지…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복도를 걷다 마주쳤던, 그녀의 과거이자 현재의 변수, 판석우였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혹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차가운 눈으로 이종석의 회장을 바라보았다.
“회장님. 변호사로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석우의 등장에 회장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스쳤지만, 이내 다시 가면을 쓴 듯 무표정해졌다. 은별은 두 남자 사이에 놓인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방금 전 회장이 내뱉은 ‘장난감’이라는 단어가 귓가에 맴돌아 떨리는 손으로 입술을 감쌌다. 그녀의 붉은 립스틱이 손등에 희미하게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