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약혼
Chapter 3 — 차가운 손길, 뜨거운 시선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귓가를 스쳤다. 선우진은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젯밤, 국승빈 회장의 손에 이끌려 온 이곳은 고급 호텔 스위트룸이었다. 텅 빈 술병들이 널브러진 방 안에서, 그는 묘한 웃음을 띠고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소유욕으로 번들거렸다.
“눈을 떴군.”
낮고 끈적이는 목소리였다. 선우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탁민재와의 계약 결혼도, 아버지의 빚도, 모든 것이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직 이 거대한 남자의 욕망만이 그녀를 짓누르는 듯했다.
“여긴… 어디죠?”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다잡으며 물었다. 국승빈은 픽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이 그녀의 뺨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선우진은 몸을 움츠렸지만, 도망칠 곳은 없었다.
“어디긴, 네가 곧 내 것이 될 곳이지.”
“싫어요! 전… 전 약혼자가 있어요!”
필사적으로 외쳤지만, 국승빈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는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 그녀의 턱을 강제로 들어 올렸다.
“탁민재? 그 잘난 사업가 말인가. 귀여운 발버둥이군. 하지만 그는 널 지켜주지 못해. 네 아버지 빚 때문에 넌 결국 내 손안에 들어올 수밖에 없어.”
그의 손길이 점점 더 위로 올라와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숨 막히는 공포가 그녀를 덮쳤다. 그때, 방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국 회장.”
차가운 분노가 깃든 목소리. 탁민재였다. 그는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국승빈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는 맹렬한 복수심과 함께, 처음 보는 종류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선우진을 향한 것이 분명했다.
국승빈은 짜증스럽다는 듯 탁민재를 바라보았다. “방해하지 마라. 이건 우리 둘만의 문제다.”
“네 것이 되기 전에, 내 손으로 끝내야겠어.”
탁민재는 망설임 없이 국승빈에게 달려들었다. 두 남자는 맹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방 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선우진은 충격과 공포로 얼어붙은 채, 두 남자의 처절한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탁민재는 국승빈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국승빈은 피를 흘리며 신음했다. 탁민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더 깊은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괜찮아?”
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선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탁민재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는, 자신의 코트를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었다.
“가자.”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그의 손이 그녀의 떨리는 손을 감쌌다. 그 온기에, 선우진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탁민재의 눈빛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는 국승빈을 노려보며 굳게 다짐하는 듯 말했다.
“네놈의 방식대로는 절대 널 내주지 않아.”
그는 선우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마치 영원히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하지만 선우진은 그의 손 안에서 느껴지는 소유욕이, 단순히 복수심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때, 탁민재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액정을 확인하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수신자는 ‘정 비서’였다.
“무슨 일이지?”
짧게 답하는 그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흘렀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지금 그게 무슨…!”
그의 외침은 채 끝나기도 전에, 탁민재는 갑자기 몸을 숙여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의 품에 안긴 선우진은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선우진 씨… 큰일 났어요.”
탁민재의 눈앞에, 선우진의 아버지와 국승빈이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 나타났다.
“이 사진… 어떻게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