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남편 구함

Chapter 3 — 차가운 유리잔 속의 온기

차가운 공기가 두 사람 사이를 감돌았다. 용성재의 눈빛은 깊고 복잡했으며, 김다인은 그의 예상치 못한 부름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편안했던 그의 어깨에 기대 잠들었던 자신이, 마치 금방이라도 깨질 듯 위태로운 유리 조각처럼 느껴졌다.

“다인 씨.”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묘한 떨림은 다인의 감각을 곤두세우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마치 숨겨진 진심이라도 꿰뚫어 보려는 듯한 집요함이었다.

“왜… 왜 그러세요?”

겨우 짜낸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의 갑작스러운 이름 부름과 그 뒤에 이어진 침묵이, 지금까지의 가짜 부부 행세가 얼마나 위태로운 연극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그는 그녀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아니면, 그저 잠결에 나온 실수였을까.

용성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다인이 기대고 있던 어깨에서 몸을 떼어야 했고, 그 빈 공간은 서늘한 기운으로 채워졌다. 그는 다인이 앉아 있던 소파 옆, 작은 테이블에 놓인 얼음물 잔을 들었다. 차가운 유리잔 표면에 맺힌 물방울들이 그의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시간에 왜 안 자고 있었어?”

그는 잔을 들어 물을 마시며 물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바라보던 강렬한 눈빛과는 사뭇 다른, 일상적인 물음이었다. 다인은 혼란스러웠다. 그의 태도가 너무 갑작스럽게 변했다. 마치 방금 전의 일은 없었던 것처럼.

“잠이 안 와서… 조금 걷고 있었어요.”

“이 집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그가 다인의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고 되묻는 방식은, 다인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진실을 숨기고 있거나, 혹은 그녀가 알 수 없는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그녀는 섣불리 그의 의도를 파악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이 어색한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런 것 같아요. 아직은… 좀 낯설어요.”

“걱정 마. 곧 익숙해질 거야.”

그가 잔을 내려놓고 다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그녀의 곁에 앉는 대신, 창가로 걸어가 빌라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달빛이 정원의 나무와 꽃들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다인은 그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숨죽이고 있었다.

“그래도, 덕분에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어요.”

다인은 먼저 침묵을 깼다.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쨌든 그는 그녀에게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했다. 그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용성재는 희미하게 웃는 듯했다. “편안했다니 다행이네.”

그는 다시 다인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좀 더 부드러운 눈빛이었다. “혹시… 추워? 난방은 충분할 텐데.”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감정이 좀 복잡해서요.”

그녀의 솔직한 대답에, 용성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다인에게 집중했다.

“복잡한 감정이라… 나 때문인가?”

그의 물음은 단정적이기보다는, 조심스러운 탐색에 가까웠다. 다인은 그의 질문에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의 의외의 다정함, 잠결에 자신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 그리고 지금의 이 복잡한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아직 제가 있어야 할 곳인지, 잘 모르겠어서요.”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했지만, 그의 곁에서 느끼는 묘한 안정감과 설렘 때문에 오히려 이곳에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그에게 드러낼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은 계산된 거짓이었다.

용성재는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침묵했다. 그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지만, 어딘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천천히 다가와 그녀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가웠지만, 닿는 순간부터 뜨거운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다인 씨.”

그가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다인은 그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당신은… 여기 있어야만 해.”

그의 말은 마치 명령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묘한 절박함은, 다인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단순히 사업적인 거래 상대일 뿐이라면, 왜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걸까. 그리고 왜, 이렇게 자신을 붙잡고 있는 걸까.

다인은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그의 눈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차가운 유리잔처럼 투명하면서도, 그 안에 온기를 품고 있는 듯한 복잡한 감정을 발견했다. 그것은 단순한 거래 이상의 무엇이었다.

바로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용성재는 다인의 손을 잡은 채,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다인을 향해 고개를 돌려,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이미 그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누구…?”

다인이 묻기도 전에, 용성재는 차갑게 말했다.

“나가.”

그의 싸늘한 목소리는 다인을 당황하게 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이지? 그가 손을 놓으며 뒤로 물러서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낯선 여자가 들어섰다. 그녀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용성재를 보자마자 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성재 오빠! 나 왔어요!”

그녀는 용성재에게 와락 안기며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용성재는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밀어내려 했지만, 여자는 끈질기게 매달렸다. 다인은 그 광경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짜 부부 행세를 하는 이 순간,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이라니.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녀의 등장과 함께 용성재의 눈빛에서 읽혔던 복잡한 감정이 사라지고, 차가운 절망만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성재 오빠, 대체… 이 여자 누구야?”

그녀가 다인을 쏘아보며 물었다. 용성재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다인과 여자를 번갈아보며,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설계한 듯한 냉혹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