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핑계, 심장 핑계

Chapter 3 — 서랍 속 낡은 사진, 엇갈리는 시선

밤은 깊었고, 사무실에는 희미한 형광등 불빛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한예서는 라준형의 날카로운 질문을 뒤로하고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서랍을 닫았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거짓말. 그의 눈앞에서, 바로 앞에서, 그녀는 분명 거짓말을 했다. ‘아직 못 찾았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라준형의 표정은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버렸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볼 뿐이었다.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해석할 수 없어 예서는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라준형은 휑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은 예서의 책상에 잠시 머물렀지만, 이내 창밖의 어둠을 향했다. “늦었군. 돌아가.” 짧은 말과 함께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예서의 귓가에 묵직하게 울렸다. 혼자 남겨진 예서는 겨우 긴 숨을 내쉬었다. 서랍 속, 낡은 사진. 사진 뒷면에 희미하게 새겨진 ‘10년 전, 여름날’이라는 글자. 그리고 라준형과 섬뜩할 정도로 닮은 젊은 남자. 이 모든 것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예서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들로 괴로웠다. 라준형은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그 물건’을 찾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왜 그녀의 서랍 속에, 그것도 아주 오래된 사진이 들어 있었던 걸까? 사진 속 남자는 정말 라준형의 과거와 관련이 있는 인물일까?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겉으로는 냉철하고 완벽해 보이는 라준형에게도, 이렇게 깊고 어두운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다음 날, 예서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친 탓에 눈 밑이 퀭했지만, 그녀는 의지를 다잡았다. 어제 라준형에게 했던 거짓말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사진의 진실을 밝혀내야 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어젯밤의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라준형이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간 후, 혹시 그가 두고 간 단서가 있을까 싶어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의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녀는 더 이상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예서 씨, 오늘도 일찍 나왔네?”

김수현의 밝은 목소리에 예서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수현은 갓 내린 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두 잔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어… 네, 수현 씨. 그냥… 잠이 안 와서요.”

“밤새 무슨 일 있었어요? 표정이 안 좋아요.” 수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예서를 바라보았다. 그의 진심 어린 걱정에 예서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어제 대표님한테 좀 혼나서요. 제가 좀 실수를 했나 봐요.”

수현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예서에게 커피를 건네며 나지막이 말했다. “대표님이 좀… 무서울 때가 있죠. 하지만 예서 씨는 잘 해낼 거예요. 처음엔 다들 어려워하니까.”

그의 말에 예서는 고마움을 느꼈다. 수현은 그녀에게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녀는 수현에게도 차마 털어놓지 못한 사진의 비밀을 혼자 간직한 채, 다시금 서류 더미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온통 서랍 속 사진에 쏠려 있었다. 그녀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시 한번 서랍 안을 뒤졌다. 사진 외에 다른 특이한 점은 없었다. 낡은 사진 한 장. 어쩌면 이것이 라준형의 모든 것을 뒤흔들 수 있는 열쇠일지도 몰랐다. 그때, 그녀의 손끝에 딱딱한 무언가가 걸렸다. 사진이 들어 있던 종이 봉투였다. 그녀는 봉투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 봉투 안쪽, 희미하게 보이는 글씨. 마치 누군가 아주 조심스럽게 덧붙인 듯한 문구였다.

‘그것을 묻지 마시오.’

이 문구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진을 넣은 사람이 경고를 남긴 것일까? 아니면 사진 그 자체에 대한 경고일까? 혼란은 더욱 깊어졌다. 예서는 사진과 봉투를 조심스럽게 챙겨 넣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녀는 진실을 알아야 했다. 라준형의 과거, 그리고 이 사진의 의미를.

오후, 예서는 무언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망설임 끝에 라준형 대표이사실 문을 두드렸다.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며 문을 열자, 라준형은 이미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도시는 캄캄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대표님.”

그녀의 부름에 라준형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어딘가 깊은 슬픔이 드리워져 있는 듯했다. 예서는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제가… 어제 못 찾았다고 말씀드린 ‘그 물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라준형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예서를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마치 그녀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예서는 그의 시선에 압도당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사진… 제 서랍에서 나온 그 사진에 대해 말씀이신가요?”

라준형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경계심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예서에게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텅 빈 사무실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리고 그는 예서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그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