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다리 위의 약속
Chapter 3 — 차가운 빗줄기 속, 엇갈린 진심
차가운 빗줄기가 세차게 유리창을 두드렸다. 서연은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심장은 갈기갈기 찢어진 듯 아팠지만, 눈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복도에서 본 그 장면, 원빈우의 배신은 이미 현실이 되어 그녀의 두 번째 삶을 덮쳤다. 그의 변명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서연 씨, 제발… 오해예요. 정말로….”
원빈우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서연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손을 뿌리치고 뛰쳐나온 뒤, 그녀는 정신없이 택시를 잡아탔다. 빗물로 얼룩진 도시를 헤치며 택시는 맹렬하게 달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이 지독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2010년, 그녀가 죽었던 그 순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병실에서 차갑게 식어가던 자신의 모습, 곁을 지키던… 아니, 지키지 못했던 원빈우의 절망적인 얼굴. 그때 그가 곁에 있었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까? 회귀는 그녀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었지만, 그 기회는 시작부터 잔인한 현실과 마주하게 했다.
택시가 멈춘 곳은 낯선 동네의 허름한 모텔 앞이었다. 서연은 카드를 내밀며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낡은 방 안,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짐도 없이 덜덜 떨리는 몸으로 침대에 주저앉았다. 옷은 빗물에 흠뻑 젖어 차가웠고, 몸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나른했다. 그러나 정신은 오히려 또렷했다. 눈앞에 펼쳐진 이 지옥 같은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그때,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는… 원빈우였다. 망설임 끝에 전화를 받았다.
“…….”
“서연아, 지금 어디야. 말 좀 해봐. 제발….”
원빈우의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절박함이 느껴졌지만, 서연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가 있었다. 자신을 향했던 사랑은 이미 변질되었거나, 혹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몰랐다.
“나… 이제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어요.”
겨우 내뱉은 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전화기 너머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원빈우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변명도, 애원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차가운 체념만이.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쿵. 전화가 끊어졌다. 서연은 휴대폰을 쥔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빗줄기는 여전히 거셌다. 그녀는 자신이 내뱉은 말의 무게를, 그리고 그 말이 가져올 파장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도시의 불빛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때, 모텔 복도를 걷는 익숙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그녀의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똑똑.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