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속의 벚꽃

Chapter 3 — 빗속의 붉은 깃털

차가운 빗줄기가 금도현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경주역 광장의 네온사인 불빛은 빗물에 번져 흐릿했고, 귓가에는 위협적인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맹렬하게 파고들었다. 방금 전까지 봉하나를 향한 위하준의 섬뜩한 집착을 목격했던 도현의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는 굉음을 내며 도현 바로 앞에 멈춰 섰다. 헬멧을 쓴 운전자는 빗물에 젖은 검은색 가죽 재킷 차림이었다. 그의 시선이 헬멧 바이저 너머로 도현을 향했지만,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오토바이에서 흘러나오는 매캐한 배기가스 냄새가 빗물 냄새와 뒤섞였다.

“누구냐. 왜 여기에 나타난 거지?”

도현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묻힐 듯 작았지만,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이 낯선 등장인물이 봉하나에게 어떤 위협이 될지, 혹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위하준과 관련된 인물일지도 몰랐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아무 말 없이 헬멧을 벗었다. 빗물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낯설었다. 날카로운 턱선과 깊은 눈매. 그는 도현을 똑바로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하고 낮았다.

“금도현 씨.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날 기다렸다고? 무슨 뜻이지?”

도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수상쩍었다. 봉하나가 그의 곁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찢어진 스카프 조각을 쥔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세화그룹 회장님께서… 당신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세화그룹 회장. 그 말에 도현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회귀 후 처음으로 떠올렸던, 봉하나의 아버지. 그가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거의 비극과 관련된 것인가, 아니면 미래에 대한 경고인가?

“회장님이… 나에게?”

“네. 곧 있을 세화그룹의 중대 발표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하시는군요.”

중대 발표. 도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남자가 말하는 회장은 아마도 봉하나의 친아버지일 것이다. 그가 자신에게 접근한 이유는 봉하나와 관련된 일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아군인가, 적인가? 혹은 제3의 인물인가?

오토바이 운전자는 헬멧을 다시 쓰며 시동을 걸었다. 빗물이 그의 가죽 재킷 위에서 진주알처럼 굴러떨어졌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곳’에서 하시죠.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봉하나 양도 함께.”

‘그곳’. 낯선 단어에 도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봉하나를 ‘함께’ 데려가라고? 그는 잠시 망설였다. 이 남자를 믿어도 되는가? 하지만 봉하나의 불안한 표정을 보니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그녀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알겠다. 안내해.”

도현은 봉하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봉하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도현의 확신에 찬 눈빛을 보고 그의 손을 잡았다. 빗물로 축축한 서로의 손이 닿자, 묘한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오토바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현과 봉하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은 마치 세 개의 붉은 깃털처럼 빗물에 젖어 흐릿해 보였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그리고 세화그룹 회장의 ‘중대 발표’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도현은 봉하나의 작은 손을 꽉 잡으며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 그의 마음속에는 봉하나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다짐과 함께, 낯선 오토바이 운전자에 대한 깊은 의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빗속을 헤치고 도착한 곳은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웅장한 저택의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앞에는 고급 세단 두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세단에서 내린 중년의 남성들은 일렬로 도열하여 도현과 봉하나를 맞이했다. 모두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낯선 오토바이 운전자는 고개를 까딱이며 도현과 봉하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회장님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샹들리에의 찬란한 불빛이 그들을 맞이했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값비싼 예술품들이 전시된 넓은 로비. 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는 어딘가 차가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도현과 봉하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방 안을 압도하는 듯했다. 날카로운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 짙은 카리스마를 풍기는 그의 모습은… 바로 금도현이 과거 회귀 전에 마주했던, 봉하나의 아버지, 세화그룹 회장이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낯선 오토바이 운전자가 서 있었다. 그는 헬멧을 벗은 채, 차가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순간, 도현은 깨달았다. 이 남자는 단순한 운전기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회장 역시, 단순한 만남을 주선한 것이 아니었다.

“어서 오게, 도현 군. 그리고… 우리 하나.”

회장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의 시선은 금도현을 향했지만, 그 안에는 묘한 경계심과 함께… 숨겨진 흥미가 담겨 있었다. 봉하나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빗속에서 붉은 깃털처럼 보였던 그들의 모습은, 이제 차가운 저택 안에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